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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햄튼의 노련한 주장' 스티븐 데이비스 - 릴싸위키




플레이 스타일

노련하고 경험많은 스티븐 데이비스는 활동량이 풍부한 중앙 미드필더이다. 공격형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자리도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경기에선 중앙 미드필더에서 

전후방을 오가며 팀의 공수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기본적으로 기복이 적은 선수이며 직접적으로 공격포인트를 쌓지않아도 경기 내적으로서 팀의 알토란같은 존재가 

되어준다. 30살을 넘긴 나이에 노쇠화가 진행되어도 팀내에서 많은 선발출장을 기록하는게 그 반증.  피지컬이 피지컬인지라 공중볼에선 많이 약하다.





아스톤빌라의 소년, 동경해왔던 레인저스의 주전이되다.

아스톤빌라 유스클럽에서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스티븐 데이비스는 04-05시즌에 프로데뷔를 하였고 본격적으로 주전으로서 적은나이에도 리그 28경기를 출전하는 등 성공적인 데뷔시즌을 치뤘다. 


이후 추가로 두시즌을 더 치룬 데이비스는 세시즌동안 리그서 91경기를 출장해 점차 성장해갔지만 아스톤 빌라시절 말기인 06-07시즌 새 감독인 마틴 오닐이 

부임하고서부터 선발출장 경기가 확 줄고 교체를 통한 출전이 많아지자 자신을 '제 2의 램파드'라 칭한 로리 산체스가 부임한 풀럼으로 07/08시즌 75억의 이적료로

이적하게된다. 


로리 산체스 부임하에 리그 22경기를 치뤘고 이적후 반시즌만에 자신이 동경해왔던 팀 레인저스로 임대이적을 하였다. 후에 08/09시즌 60억의 이적료로 완전이적하였고

첫 이적시즌인 08/09시즌부터 10/11시즌까지 리그 117경기를 출전하면서 팀의 리그 3연속 우승에 큰 도움을 주었고 2010년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2009년엔 셀틱의 레전드 스티브 브라운이 수상하였다.) 


11/12시즌엔 비록 4연속 우승엔 실패를 했지만 그래도 준우승을 하였고 그 시즌에도 33경기에 출전하였다. 


하지만 12-13시즌 레인저스라는 클럽을 확 뒤집어놓은 사건, 크레이그 화이트의 축구계에 한획을 그을만한 사기 행세로 팀은 순식간에 1억 3400만 파운드라는

천문학적인 빚에 떠안기게되었고 파산까진 어찌저찌 모면했지만 팀은 4부리그로 강제 강등당했다.


 이과정에서 스티븐 데이비스는 어쩔수없이 다시 EPL로 돌아가게되는데,  그 클럽은 바로 사우스햄튼이다.





사우스햄튼의 부지런한 주전으로 발돋움하다.


사우스햄튼은 레인저스의 사정으로 인해 스티븐 데이비스가 꽤나 실력있는 선수임에도 14억이란 헐값에 건질수있었고 데려오자마자 리그 32경기에 출장하는등 서서히 팀내 

입지를 강화하였다.


 12년 8월 19일 사우스햄튼에서는 첫 경기를 가졌고 첫시즌이다보니 교체경기 비율이 꽤 있었지만, 다음시즌인 13-14시즌부터 점차 줄었고 특히 

해당시즌엔 팀에 새로 온 선수들인 빅터 완야마, 대얀 로브렌 등의 선수들과 돌풍을 이끌어 승격팀임에도 리그 8등에 안착하게 된것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하지만 아무리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도 선수 개인의 욕심은 백이면 백 다 채울수가 없었던지라, 아담 랠라나, 리키 램버트와 같은 핵심선수들이 타클럽으로 이적을

하였는데 스티븐 데이비스 만큼은 그러지않았고, 팀에 계속 있어주면서 거의 공중분해에 가까운 선수방출이 이뤄져도 꿋꿋이 10위 이상 차지에 일조를한다. 


특히 16-17시즌엔 리그컵 결승까지 올라가 드디어 잉글랜드에서 첫 타이틀을 따내는가 했지만 아쉽게 맨유에게 3-2로 지게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악몽과 같은 시즌, 가까스로 강등을 면하다.


17-18시즌은 사우스햄튼에게나 데이비스에게나 별로 기억하고싶지 않은 최악의 시즌이였다. 16-17시즌 마네, 완야마, 그라치아노 펠레가 나간 팀을 가비아디니, 

레드먼드, 부팔 등의 선수들로 성공적으로 메꾸었고 리그 8위와 리그컵 준우승이라는 인상적인 활약을 거둔 클로드 퓌엘감독을 경질한 뒤 페예그리노를 데려왔고,


시즌 시작하고나선 수비의 핵 버질 반 다이크의 부상과, 공격진들의 빈곤한 득점력으로 스티븐 데이비스가 제임스 워드 프라우즈와 함께 알토란같은 활약을 선보임에도 

실점은 늘고 득점은 확줄었다.


결국 사우스햄튼은 전반기동안 단 1승만을 거둔 페예그리노를 경질하고 마크 휴즈를 급히 데려와 끄끝내 잔류에 성공하게된다. 결과론적으론

강등은 면했지만, 과정에 있어서 짧은시간에 감독이 두번바뀌었고, 서서히 노쇠화가 진행되어 선발출장에 곤혹을 겪은 데이비스나 잘못된 경질로 강등당할뻔한 

사우스햄튼에게 별로 기억되고싶지않은 '삽질의 시즌'이였다.


강등은 면했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를 추구하지 못했다. 지난시즌의 암흑기는 18/19시즌 현재까지 이어지고있고 스티븐 데이비스 본인도 리그 96분 출전에 그치고있다.

그런 와중에 토트넘전에 기록한 공격포인트는 고무적이다.





국대에서도 꾸준했던 데이비스, 북아일랜드를 유로 2016으로 이끌다.

국가대표의 일원이 되기 시작한건 2005년 2월 9일 캐나다와의 국가친선경기이다. 폼이 안정적이였던 14-15시즌 소튼에서의 활약을 국대에서도 잘 보여주었고, 국가의

유로 2016 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뒤이어 유로 16에 출전하게된 데이비스는, 북아일랜드의 모든경기에서 선발출장하였고 비록 가레스 베일의 웨일스에 막혀 

16강에 만족해야했지만, 큰 메이저대회임에도 기죽지않고 평탄한 활약을 선보여주었다. 외에도 UEFA 네이션스리그와 같은 크고작은 메이저대회 및 국가 친선경기에 항상

주전으로 활약하는 등 리그팀에서만큼 국대에서도 나이와 상관없이 꾸준하였다.





끝마치며..


데뷔시즌부터 지난시즌까지 매시즌 리그 20경기 이상을 뛰어온 그만큼 부지런하고 기복없는 선수는 많지않다. 이번시즌부턴 그를 대체할 젊고 유능한 선수들이 사우스햄튼에

많아졌고 데이비스만 놓고봐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예전만한 경기력을 기대하는건 꽤 힘들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데이비스는 여러클럽에서 박수를 받을만한 노련함을 

선보였고, 매시즌의 경기수는 그만큼 기복및 부상없이 꾸준한 데이비스를 설명해주는 확실한 지표이자 동료선수들이 다 떠나도 자리를 지켜 매순간 사우스햄튼과 

함께한 그의 의리는 조명받을 필요가 있으며, 직접적으로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인상적이지 않을수도 있지만, 이 글을 읽고난 독자들이 

스티븐 데이비스가 어떤선수였는지 기억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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