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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싸위키 :: '손흥민의 경쟁자' 믈라덴 페트리치









플레이 스타일

이 크로아티아의 공격수는 대부분 스트라이커로 많이 뛰지만 공격형 미드필더와 쉐도우 스트라이커, 그리고 양쪽 윙도 플레이가 가능한 멀티플레이어이다. 주 포지션이

공격수이긴 하지만 득점을 도맡는다기보단 뛰어난 순발력 앞세운 쓰루패스 능력을 더 의존했고 강한 중거리슛 능력또한 발군이였으며, 보다 빠른 타이밍에 

슈팅하는것도 능했다. 하지만 활동량이 적은편이고 드리블 능력도 그렇게 준수한 편은 아니여서 전형적인 10번 공격수는 아니였다.






작은클럽에서 명문 그라스호퍼로,


98년도에 스위스 2부리그 소속의 바덴에서 데뷔한 페트리치는 데뷔시즌에 22경기에 출장해 지역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스위스의 명문클럽 그라스호퍼는

당시 열여덟살에 불과했던 믈라덴 페트리치를 데려오게된다. 이적료는 비공개.


 그라스호퍼에서의 첫시즌은 어린선수로서 임대도 못간채로 시즌 통틀어 단 두경기밖에 못뛰었지만, 00/01시즌부턴 출전권을 확실히 보장받았었다. 


그 후 그는 리그에서 112경기를 출장해 31골을 넣어 팀의 00/01시즌, 02/03시즌 리그 우승에 일조를 했고  스위스컵에서도 자주 출장해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그러던 03/04시즌, 디펜딩 챔피언이였던 그라스호퍼는 리그 7위로 급락하게되고 페트리치도 그당시 28경기에 출전해 6골을 넣는등 저조한 활약을 선보여 그라스호퍼에 

새로온 공격수 안드레 머프와 호제리우를 뒤로하고 25억의 이적료로 FC바젤로 떠나게된다. 






전성기와 함께 분데스리가로 떠나다.


04/05시즌부터 FC바젤의 일원이 된 페트리치는 첫시즌엔 전반기에만 활약하고 후반기엔 경기를 못나왔었지만 팀은 스위스 슈퍼리그에서 1위를 하였고 


05/06시즌부턴 주전으로 발돋움해 리그에서 서른한경기에 출장해서 14골을 넣었고 그 다음시즌엔 리그 25경기 19골을 넣어 리그 득점왕을 수상하는 엄청난 대활약을 

선보이지만 안타깝게도 팀은 두시즌 연속으로 리그우승에 실패하게된다. 그래도 06-07시즌에는 스위스컵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우승에 일조를해 무관으로 끝마치진 않았다.


스위스 1부리그의 득점왕을 다른 유럽팀들이 가만히 냅둘리 만무했다. 페트리치는 핫 키워드가 되었으며, 그 결과 독일의 명문 도르트문트로 이적을 하게된다. 이적료는

45억원. 


리그성적이 점점 하향곡선을 찍는통에 유럽클럽 대항전 출전권도 못얻은지 오래인 도르트문트는 기사회생을 원했으며 그런 취지로 스위스 리그 득점왕을 막 수상한

믈라덴 페트리치와 유벤투스의 로베르트 코바치, 비스와 크라쿠프의 야쿱 브와슈치코프스키 등을 데려왔지만 간판공격수 알렉산더 프라이의 근섬유 손상 부상으로 인해

후반기를 통으로 날려먹었고, 


이때문에 도르트문트는 전시즌보다 4위 더 떨어진 13위라는 성적에 만족해야만했다. 페트리치는 이 시즌 리그 29경기 13골을 넣었고 포칼컵에선 매경기 공격포인트를 

한개이상씩 기록하는 대단한 활약을 펼쳤지만 결국 뮌헨이라는 벽에막혀 포칼컵마저도 준우승에 그쳤고, 전체적으로 페트리치의 활약 하나로는

 팀의 재기를 바라기엔 역부족이였다.


 사령탑마저 바뀌게되자 결국 한시즌만에 페트리치는 짐을싸서 같은리그의 함부르크로 떠나게되는데..


외담으로 바뀐 사령탑은 바로 위르겐 클롭이다.







함부르크에서의 맹활약, 뒤숭숭했던 EPL 시절.


117.5억원의 거액으로 이적을한 페트리치는 이적료만큼의 기대에 부응을 하였다. 첫시즌부터 리그 12골을 몰아친 그는 포칼컵에서도 3골을 넣어 팀을 준결승전까지

이끌었고, 


그 다음시즌인 09/10시즌에도 리그에서 26경기에 출전해 8골을 넣었다. 이 시즌 유로파리그에서 12경기에 출전해 6골 3도움을 기록해 팀을 4강까지 이끌었지만 준결승전에서

풀럼을 만나 아쉽게 탈락하였다. 


그 이후에도 두시즌을 함부르크에서 뛴 페트리치는 남은 두시즌에서도 리그 48경기 19골을 넣어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활약을 보여주긴 했다만, 팀은 페트리치가 온 시즌인

08/09시즌부터 각각 5위, 7위, 8위, 15위를 기록해 깊이있는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팀은 리빌딩이 필요했으며  페트리치도 이를 피할순 없었다. 


나이가 어느덧 30줄에 찬 페트리치는 다음 목적지를 공격수들의 무덤 EPL로 정하게되는데, 08/09시즌 함부르크서 자신을 영입한 마틴 욜이 부임하고있던 풀럼으로 

자유이적한 후 데뷔전에서 노르위치를 상대로 2골 1도움을 기록해 풀럼팬들의 많은 기대를 샀지만, 그후 리그 22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는데 그쳐 인상적인 활약은 펼치지

못했다. 


EPL에서의 첫시즌을 만족못했는지, 같은리그인 웨스트햄으로 자유계약이적해 또다시 EPL무대에 도전을 내걸었지만 이번엔 부상이 발목잡았다. 종아리 근육 부상으로 인해

전반기를 사실상 날려먹었고 부상도 제대로 완치하지 않은채 그리스 수퍼리그의 파나티나이코스로 이적을 하였다. 


풀럼때부터 그라스호퍼로 돌아갈것이란 예측이 많았지만 의외로 그리스 리그의 팀으로 이적을해 화제가 되었다. 한편 페트리치는 새 팀으로 와서 완치하지않은 부상을 마저

치료하고, 경기에 출전했다.


리스는 처음인 무대였기에 첫시즌은 경기에 출전했다는거에 의의를 둬야했지만 그다음시즌엔 좌측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등 자리를 가리지않고 출전하여 비록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통과는 실패했지만 유로파리그 출전을 하는데에 일조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팀은 유로파리그에서 조별리그 탈락하고만다.


 그 이후에도 한시즌을 더 뛴 페트리치는 파나티나이코스에서 리그 53경기 11골이라는 기록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고, 현재는 축구계의 감독이되어 일자리를 

구하고있다.








국가대표에서..



페트리치는 국가대표 소속으로 45경기를 뛰었지만 월드컵에선 한번도 뛰질 못했다. 그의 국가대표 커리어 하이는 유로 2008 예선이였으며, 러시아, 잉글랜드 등과 한 조가된

크로아티아를 잉글랜드를 꺾고 유로 본선진출을 하는 이변을 연출하는데에 큰 몫을 해냈다. 


예선경기에서만 7골을 넣어 욘달 토마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유로  2008 예선 최다 득점자 4위에 랭크하게된다. 조국을 유로 2008 본선으로 이끈 페트리치는 

조별리그에서 모두 출전하면서 팀의 8강진출에 일조하였지만, 8강에서 만난 터키라는 존재는 쉽게 넘을수 있을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였다. 이반 클라스니치가 119분경

기적적인 동점골을 일궈냈지만 승부차기에서 페트리치를 포함한 세명의 선수들이 실축을 해 결국 승부차기 스코어 1:3으로 터키에게 8강전에서 탈락의 고비를 마시게된다.


 페트리치는 이 대회를 끝으로 메이저대회와의 연이 끊겼다.







끝마치며..


우리에겐 흔히 '손흥민의 경쟁자'라고 인식이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게 기억을 하고있을 축구팬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래뵈도 스위스 1부리그 득점왕 출신이며

그의 재능을 높이사서 영입한 클럽이 무려 도르트문트란걸 감안하면 손흥민이 그 어린나이에 이런선수하고 주전경쟁을 했구나 하며 다시금 예전의 기억을 되짚어볼수있다.


EPL 도전기는 정말 아쉽고 가엾게 끝나긴했지만 그래도 그리스 리그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말년을 보내 선수생활을 잘 끝마무리하였다. 페트리치가 나중엔 훌륭한 감독이

되어서 피치 위가 아닌, 벤치 위의 '감독' 페트리치의 모습을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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