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 싸커 - 축구 이야기 :)

'신장병 스트라이커' 이반 클라스니치


Ivan Klasnić


출생일 1980년 1월 29일


키 186cm


포지션은 공격수



* 유소년 클럽 기록

199?-92 TSV Stellingen

1992-98 장크트 파울리


* 클럽 기록

1998-2001 장크트 파울리

2001-08 베르더 브레멘

2008- 낭트

2009-10 볼튼 (임대)

2010-12 볼튼

2012-13 마인츠


* 국가대표팀 기록

2001 크로아티아 U-21

2004-11 크로아티아


2004 유로 발탁

2006 월드컵 발탁 3경기 

2008 유로 발탁 2경기 2


통산 41경기 12골


* 수상 경력

독일 분데스리가 (03-04)

포칼컵 (03-04)

리가포칼컵 (06-07)



플레이 스타일

신장병으로 인해 부모님에게서 신장을 이식받은 이력이 있는 이 크로아티아인은 빠른 타이밍에 슈팅하는 것을 즐겨했다. 그의 축구지능은 장점으로 여겨졌지만 그에 반해 

스피드와 약발 사용빈도는 항상 약점으로 지목되었다.





장크트 파울리의 유망주 공격수, 분데스리가 상위권 브레멘으로 떠나다.


1998년 열일곱의 나이로 장크트 파울리 프로팀에 입성한 클라스니치는 당시 독일 2부리그 상위권을 유지하였던 장크트 파울리의 후반기 여러경기에 교체출전으로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하였다. 공격포인트 기록에는 실패하였지만 열여덟의 나이에 프로 경기에 출전한거 자체에 의의를 둘만했다.


98/99시즌 전시즌 팀내 최다 득점자였던 유리 사비췌프의 전력 이탈로 하여금 클라스니치의 기회가 생겼다. 초중반기에 서서히 폼을 올렸고 후반기에 본격적으로 많이 출전

하더니 리그 마지막 라운드였던 슈투트가르트 키커스와의 경기에선 한경기 네골도 넣어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99/00시즌 들어선 팀의 주전으로 발돋움하여 시즌 총 40경기에 출장해 12골 2도움을 기록한다. 출장시간도 부쩍 늘었다.


00/01시즌 전반기 폭발적인 활약을 선보여 팀에게 좋은 전력을 보태주었지만 그 활약을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전반기에 모습에 비하면 아쉬운 모습으로 일관하였지만

시즌 초반 그의 골들로 이루었던 상위권을 시즌 끝날때까지 유지하는데에 성공해 3위로 분데스리가 승격에 성공하였다.


네시즌간 장크트 파울리에서 충분한 성장을 일궈낸 클라스니치는 2001년 여름이적시장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하게된다. 당시 토마스 샤프의 지휘 아래 있던 베르더

브레멘은 토르스텐 프링스, 아일톤 등의 활약으로 리그 상위권을 노리던 클럽이였고 리그와 클럽의 수준이 확 높아지자 클라스니치는 출전 시간도 줄어들게 되고, 공격포인트

역시 급감하게된다. 


이 상황은 02/03시즌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팀은 점점 상승세를 나아갔고 그 속에서 클라스니치는 후보 멤버에 만족해야했다. 한편 포칼컵에서 기록한 세골과 유에파컵

플레이오프에서 기록한 두골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을만 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끝에 더블을 일궈냈지만 갑작스레 터진 신장병 


출전 경기수만 보면 그는 철저히 후보선수로 취급받았으나 토마스 샤프 감독은 본인의 플랜에서 항상 클라스니치를 염두하고 있었다. 03/04시즌 초반 5경기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1860뮌헨 전에서부터 서서히 샤프에게 기용받았다. 쾰른과 볼프스부르크를 상대로 두경기 연속골을 계기로 샤프의 투톱을 담당했던 아일톤-하리스테아스의 조합은

변화가 가해졌다. 하리스테아스의 자리는 서서히 클라스니치가 범접하였고 마치 기다렸다는듯 클라스니치는 공격포인트를 무자비하게 뽑아냈다. 전반기에 12경기 6골

6도움을 기록했으며 교체투입, 교체아웃이 많았다는걸 감안하면 꽤나 고무적인 기록이다. 


리그 후반기에서도 그 활약을 이어나가기 위해 나머지 시즌에도 노력하였고, 이는 결실을 맺었다. 베르더 브레멘은 무려 21년만에 분데스리가 우승을 일궈내었으며 그 중심엔

 몇시즌간 꾸준히 팀내 최다득점을 도맡았던 아일톤과 팀의 플레이 메이킹을 담당했던 요앙 미쿠도 있겠지만 이반 클라스니치의 깜짝활약도 크게 지분을 맡았다.


한편 포칼컵에서도 리그에서의 활약을 보여주었던 클라스니치는 이시즌 대회 6경기 6골 2도움을 기록하여 팀의 포칼컵 우승을 이끌었고, 더블을 기록한 03/04시즌엔 

브레멘과 클라스니치에겐 최고의 시즌이 되었다.


04/05시즌, 디펜딩 챔피언에 빛난 베르더 브레멘은 아일톤을 제외하면 전력 누수가 딱히 없었고, 오히려 페트리 파사넨과 미로슬라브 클로제를 데려오게되면서 챔스와 리그를

성공적으로 병행할만한 스쿼드를 구성하였다. 그 스쿼드에 클라스니치는 단연 주전담당이였다. 리그에서는 지난시즌만큼은 아니여도 꽤 임팩트를 보여줬었고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선 무려 5골을 기록하게되지만 16강에서 만난 리옹에게 통합스코어 10-3으로 탈락하는 굴욕을 겪었었다. 리그컵 결승에선 뮌헨에게, 포칼컵 준결승전에선

샬케에게 져 분위기 전환에 실패한 브레멘은 리그 2연패에는 실패와 함께 무관을 기록하였다.


리그 3위로 챔스 자동진출권을 얻은 05/06시즌에 들어서도 클라스니치는 주전 공격수를 도맡았고 이 시즌 리그에서 15골을 기록해 리그 득점순위 6위에 랭크하게된다.

외담으로 파트너 공격수 미로슬라브 클로제는 25골을 기록해 득점왕을 수상하게된다..


06/07시즌 아론 헌트의 공격수 포지션 변경이 대박을 치르게되고, 그의 활약은 클라스니치의 자리를 위협했다. 또한 임대로 데려온 휴고 알메이다도 눈엣가시였으리라.

하지만 진정한 위기는 자신의 입지가 아닌 본인의 체내에 있었다. 2007년 1월 하순 신장병 진단을 받은 클라스니치는 치료를 위해 피치 위를 잠시 떠났고 치료 기간은 무려

9개월 가량이 걸렸다.


무사히 재활을 마친 클라스니치는 복귀후에도 많은 경기에 발탁되었다. 큰 수술을 마치고 왔던지라 출전시간이 많지 않았음에도 리그 16경기 7골을 기록하게된다.





리그1에서의 실패, EPL에서는 잘했지만 강등을 면하진 못하다.


08/09시즌, 클라스니치는 새 모험을 떠나러 갔다. 프랑스 리그1에 이제 막 승격한 낭트에 자유이적을 하였고 마이클 자카리안 감독의 지휘아래 많은 경기에 출전하게 되지만

아무래도 처음인 리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분데스리가에서 항상 우승을 노리던 클럽에서 이제 막 1부리그에 승격한 클럽으로 이적하다보니 수준차이가 심해서인지,

브레멘때 활약의 절반도 못보여주고 결국 리그 28경기에 출전하면서 6골을 넣는데에 그치게 되고 팀은 강등당하게된다.


리그1에서 실패를 경험한 클라스니치는 그당시 FC 서울의 이청용을 사간 유럽 클럽으로서 한국팬들에게 여실히 이름이 났었던 볼튼으로 임대이적하게된다. 공격수들의 무덤

EPL에서 과연 좋은 활약을 펼칠수 있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리그 27경기 8골을 기록해 리그 기준 팀 내 최다득점자로 등극하게된다. 첫 시즌치곤 꽤 고무적인 기록이다.


볼튼은 나이가 30줄에 접어들었지만 리그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클라스니치를 완전영입하지만 클라스니치는 케빈 데이비스, 요한 엘만더 등에 밀려 철저히 서브멤버로

전락하였다. 리그 22경기에 출장하지만 출전시간은 313분밖에 안되었다. 한편 FA컵에선 풀타임으로서 5경기에 출전해 2골 1도움을 기록함으로서 팀이 준결승에 진출하는데에

견인하였다.


11/12시즌, 홀든의 부상과 맞먹은 팀의 부진은 끝이 없었다. 클라스니치는 엘만더가 나간 자리를 대신하여 공격포인트를 꾸준히 기록하였지만 팀의 하락세를 막아내기엔

너무 많은걸 해내야했다. 결국 11/12시즌 볼튼은 강등당하였고 12/13시즌 들어서 분데스리가에 위치한 마인츠 05로 이적하게되지만 부상의 신이 재림해 시즌 내내 3경기에

출전하는데에 그치다가 방출당했다. 결국 이 시즌을 끝으로 소속팀이 없다가 결국 현역 은퇴를 선언하게된다.





모든 국가 메이저대회 발탁, 08유로는 국대 커리어 정점. 


2004년 2월 18일 독일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를 치뤘다. 이 데뷔는 앞서 열릴 04 유로 출전에 대비한 시동이였지만 본선에선 3경기 내내 벤치에 앉는데에만

만족해야만했고 팀은 조별리그 탈락을 하게된다. 


이후 2006 월드컵 예선에 여러번 발탁되었고 본선 진출에 일조를 하였다. 독일 월드컵 최종 23인 엔트리에 들어 본선에서 3경기를 출전하지만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고 크로아티아는 조별리그 탈락을 했다.


08유로 예선에선 앞서 얘기했던 신장문제탓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본선 최종 23인 엔트리에는 들었다. 조별리그 3차전에서 폴란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MOM을

수상하였고 8강에서 만난 터키전에서도 박차를 가해 2경기 연속골에 성공하지만 아쉽게도 승부차기에 패해 투르크 군단의 돌풍을 막아내진 못했다.


이후 11년 10월 11일 라트비아전을 끝으로 더이상 발탁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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