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기 당한 스트라이커' 제임스 비티 - 릴싸위키
'박치기 당한 스트라이커' 제임스 비티 - 릴싸위키
제임스 비티의 플레이 스타일
이 잉글랜드의 떠돌이 스트라이커는 강슛을 때리는걸 선호하였으며 그의 공중볼 처리능력은 강점이였지만 발재간이 그렇게 좋은 선수는 아니였다. 또한 그의 부상 빈도는
또다른 약점이였다.
블랙번의 소년, 사우스햄튼에서 비상하다!
블랙번에서 축구를 배운 비티는 96/97시즌 프로팀으로 승격해 리그 9라운드 아스날과의 홈경기에서 선발 풀타임 출장으로서 프로 데뷔를 기록하지만 이 경기 팀은 2:0으로
졌다.
제임스 비티는 19살의 어린나이와 더불어 팀내 주전 스트라이커 크리스 서튼과 로마에서 건너온 마르틴 달린으로 인해 97/98시즌에도 후보생활에 만족해야했다.
제임스 비티는결국 2시즌간 리그 4경기 출장에 그치며 블랙번을 떠났고, 98/99시즌 23억원의 이적료로 사우스햄튼으로 이적하게된다. 당시 강등권을 진전했던 사우스햄튼
에서는 훨씬 많은 기회를 보장받을수 있었다. 외길 오스텐스타트, 마크 휴즈와 좋은 호흡을 선보인 비티는 이 시즌 35경기 5골을 기록해 점점 프로무대의 경험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99/00시즌에는 부상이 비티의 발목을 잡았다. 그 여파인지 시즌 19경기에 출장하면서 공격포인트를 단 한개도 올리지 못하였다.
그러던 00/01시즌, 드디어 그의 포텐이 터지기 시작한다! 부상의 여운을 떨쳐내고자 시즌 초반에는 주전보단 교체투입으로서 서서히 감각을 익혀나가다가 12라운드 첼시전
기록한 멀티골을 시작으로 21라운드까지 10경기동안 10골을 기록하는 인상적인 활약을 기록했고 그에 고무된 사우스햄튼은 강등권이였던 순위를 점차 중위권으로 나아갔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01/02시즌 주전 굳히기는 성공했다. 1월 열린 첼시, 리버풀, 맨유와의 3연전에서 4골을 기록해 지옥의 3연전에서 2승을 기록하게된 원동력이되었지만
맨유전에 다시한번 부상을 당해 후반기까지 결장할수밖에 없엇다. 결국 잔여시즌에 별도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하게된다.
02/03시즌 개막전인 보로전부터 주전 풀타임 출장하더니 리그 38라운드 전부를 뛰게되었다. 17라운드 버밍엄전에 5라운드
연속골에 성공하였고, 34라운드엔 6라운드 연속골에 성공하여 시즌중 중요한 시기에 팀의 광원이되어줬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FA컵 결승진출에도 성공하고 리그순위는
8위를 찍는 성공을 이뤄냈다. 비티의 개인성적도 이 시즌 44경기 23골 1도움이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득점순위에는 3위에 랭크되었다.
03/04시즌 선더랜드에서 '붐'을 일으킨 바 있는 케빈 필립스가 합류하면서 팀의 공격력에 플러스 요소가 되주었다. 케빈 필립스와 27골을 합작했고 비티는 이중 14골을 넣어
두시즌 연속 팀내 최다득점자에 등극하게 되었다.
두번의 팀내 최다득점에도 감독의 선택에서 걸러지다.
하지만 04/05시즌 헨리 카마라와 피터 크라우치의 합류와 더불어, 수시로 바뀌는 사령탑으로 인해 비티의 입지는 꽤나 흔들렸다. 더군다나 부상에도 추가로 휘말리는 바람에
전반기동안 11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는데에 그치게된다.
그랬던 비티를 겨울 이적시장 약 140억원에 달하는 이적료로 에버튼이 데려오게된다. 꽤나 묵직한 금액으로 팀을 옮겼기에 고무적이여야만 했던 비티, 하지만 의욕이
너무 앞선 탓인지 에버튼에서의 다섯번째 경기였던 첼시전에 7분만에 윌리엄 갈라스에게 범한 파울로 인하여 퇴장 및 세경기 출장정지를 당하게되었고 끊어질줄 모르는
일련의 부상으로 제 활약을 할 수가 없었던 비티는 26라운드 친정팀에게 기록한 선제골이 마지막 골기록이였다.
05/06시즌 최악의 모습을 선보였던 던컨 퍼거슨과는 달리 제임스 비티는 10골을 넣어 팀내 최다 득점자에 다시금 올라섰다. 그 10골들도 순도가 높은 골들이였고, 그가 넣은
10골이 벌어다준 승점은 무려 10점에 달한다는게 그 방증이다.
06/07시즌 공격쪽에 힘을 싣고자 했던 데이비드 모예스감독은 제임스 보건, 빅토르 아니체베, 앤드류 존슨을 데려왔고 이 멤버들의 이름값들만 보아도 알수있듯 비티는
지난시즌 팀내 최다 득점을 기록함에도 모예스의 1옵션엔 들지못했다. 교체투입이 주를 이뤘던 06/07시즌 단 두골에 기록하는데에 그쳤다.
결국 07/08시즌 자신의 기량 회복을 위해 2부리그의 셰필드 유나이티드로 최다 이적료 클럽 레코드를 갱신한 금액인 75억원의 이적료와 함께 이적하였다. 한때 1부리그에서
기량을 만개했던 스트라이커인지라 2부리그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난제가 되지 못했다. 콜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시즌 개막전 넣은 선제골을 넣음과 동시에 쾌조의
스타트를 끊음과 동시에 이 시즌 22골 5도움을 기록하였고 8월과 9월 연속으로 챔피언쉽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좋은 활약은 08/09시즌에도 이어나갔다. 전반기동안 23경기에 출전해 12골 4도움을 기록하면서 팀의 스코어러를 다시한번 입증하는데에 성공했고, 1시즌 반동안 보인
인상적인 활약으로 겨울 이적시장 토니 풀리스의 스토크 시티로 이적하게되는데...
그 유명한 '라커룸 박치기 사건'.. 그 사건을 끝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선 자취를 감추다.
셰필드 유나이티드에서 처럼 스타트는 좋았다. 첫경기였던 첼시전과 맨시티, 토트넘과의 3연전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해 이 세경기에서 스토크가 넣었던 세골에 모두 관여를
하였고 이와 더불어 시즌종료까지 팀의 주전 공격수로서 16경기에 출전해 7골 3도움을 기록하였다.
09/10시즌에는 불행하게도 셰필드와 지난시즌 후반기와같은 성공가도를 이어가진 못했다. 20라운드에서 19경기에 출전할동안 단 두골에 넣는데에 그쳤고 12월, 잉글랜드의
축구 미디어를 떠들썩하게 했던 '토니 풀리스의 박치기 사건'과 더불어 또 다시 재발한 무릎부상은 스토크 시티 생활의 임종을 암시했다.
10/11시즌 결국 제임스 비티는 레인저스로 이적하였다. 스코틀랜드에서도 일련의 부상은 비티를 놓아주지않았기에 전반기동안 10경기 1도움에 그쳤고 후반기
프리미어리그의 블랙풀로 급하게 임대를 가서 친정팀 에버튼에 넣은 한골에 더해 토트넘전, 첼시전에 넣은 한골 총 세골을 넣었지만 팀의 강등을 막을순 없었다.
11/12시즌 전반기가 막 끝나갈시점 레인저스가 임대에서 돌아온 비티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비티는 자유이적으로 단기 계약으로서 셰필드 유나이티드에 합류하였다.
3년전 셰필드에서 선보인 우수한 공격수 비티는 어디가고 없고 종아리 부상과 찰튼전 마치 격투기 선수로 전향한듯한 모습이 그때의 비티를 대신했다.
결국 12/13시즌 4부리그의 에더링턴으로 자유이적했고 플레잉코치로서 에더링턴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이 시즌 27경기 7골 3도움을 넣었고 다음시즌인 13/14시즌
10라운드를 끝으로 현역은퇴를 선언하였다. 현재는 코치로서 축구계에 종사하고있다.